나쁜 감정은 어떻게 우리를 무능력하게 만드는가?

 

EBS 다큐멘터리 팀이 삼곡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에게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각 그룹의 평소 수학 평균 점수는 거의 같았다. 두 그룹의 아이들은 같은 수학 시험을 볼 예정이지만, 시험을 보기 전에 잠깐 하는 일이 달랐다. 한 그룹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 기분 나쁘거나 짜증 나게 한 부정적인 경험 5가지를 적어보라고 했다. 다른 그룹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 기분 좋고 행복하고 신이 났던 긍정적인 경험 5가지를 적어 보라고 했다.

 

이렇게 두 그룹은 각각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을 적은 뒤 같은 수학 시험을 보았다. 시험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부정적 감정을 겪었던 아이는 73.5점, 긍정적 감정을 적었던 아이들은 78.6점을 기록하며 평균 5점이라는 큰 점수 차이를 나타냈다. 실험을 주도했던 삼곡초등학교 선생님은 이렇게 고백했다.

 

“놀랐죠. 사실 반신반의하면서 했거든요. 짧은 시간이었는데 이렇게 10분의 경험이 5점 정도 나게 하는 거면 아주 큰 차이라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다음에 설명할 골프 퍼팅 실험은 부정/긍정 감정이 우리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직관적으로 잘 보여 준다. 퍼듀대학교의 심리학자 제시카 위트 박사는 36명의 골프 선수를 모집해 2m가 되지 않는 거리에서 직경 5cm의 표준 홀에 퍼팅하게 했다. 그런데 홀 주변을 일반 골프장과는 좀 다르게 보이게 했다. 한 번은 그림처럼 영사기를 통해 홀 주변에 홀보다 더 큰 5개의 원을 둘러쌌고 다른 한 번은 영사기로 홀 주변에 홀보다 작은 11개의 작은 동그라미를 투영했다. 홀은 분명 같은 크기인데 두 개의 원이 달라 보일 것이다. 골프 선수들 또한 첫 번째 홀은 평소 자신이 연습했던 홀보다 더 작게 인식하고 두 번째 홀은 평소 자신이 연습했던 홀보다 더 크게 보였다. 그러나 실제 홀 크기는 같다.

 

 

자, 그렇다면 퍼팅 성공률은 어떻게 나왔을까? 흥미롭게도 작게 보이는 홀보다 크게 보이는 홀이 2배나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같은 사람이 같은 크기의 홀에 퍼팅했는데도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같은 대상을 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실제 수행능력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게 보이는 홀에 퍼팅했을 때는 불안감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크게 보이는 홀에 퍼팅했을 때는 평소보다 더 큰 자신감이라는 긍정적 감정이 들지 않았을까?

 

1998년 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은 자신의 논문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의 인식을 협소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긍정적인 감정은 우리의 인식을 확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이 타당성 있음을 뇌과학이 지지해 준다.

 

뇌가 처음으로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곳이 망상활성계다. 모든 감각 정보는 망상활성계를 통과하지 않으면 더 높은 수준의 정보를 처리하는 뇌 부위로 가지 못하므로 정보처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망상활성계는 모든 정보를 통과시키지 않고 그중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만을 다른 뇌 부위로 전송한다. 일종의 여과장치 역할을 하는 셈인데 그 이유는 들어오는 감각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학습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특별회원 자격으로 항상 편하게 입장하기를 원하지만, 그런 정보보다 더 높은 VIP는 따로 있다. 우리 뇌는 공부보다 생존을 더 중요시한다. 만약 안 좋은 경험이나 스트레스 등을 받아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긴다면 망상활성계는 생존에 관한 경고로 생각하고 그 어떤 정보보다 우선권을 준다. 동시에 수업을 듣거나 공부로 얻는 정보를 처리하는 뇌 부위는 활성화가 미비하지만, 생존을 담당하는 뇌 부위는 활성화된다. 결국, 부정적 감정은 학습에 말 그대로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반면 긍정적 감정은 창의력, 사고력, 판단력 등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앞서 소개한 프레드릭슨 교수가 실험 참가자들에게 압정 한 통, 성냥 한 통, 양초 한 자루를 주고 촛농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끔 초를 벽에 붙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를 한번 생각해보라.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창의력이 필요한데 먼저 통에 있는 압정과 성냥을 모두 쏟아내고 그 통을 벽에 압정으로 고정한 다음 촛대로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 때 실험 참가자들에게 맛있는 것을 주거나, 재밌는 만화책을 읽히거나 긍정적 단어들을 소리 내 읽게 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창의적 발상을 할 확률이 더 높았음을 알아냈다.

 

44명의 인턴 의사의 실험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의 힘은 강했다. 인턴 의사를 세 집단으로 나눴다. 한 집단은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다른 집단은 인도주의적 의료 행위에 대한 선언서를 읽혔으며 나머지 통제 집단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후 모든 의사에게 진단하기 어려운 간 질환 증상을 보여주고 각자 진단한 것을 발표하게 했다.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진단한 집단은 첫 번째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 집단이었다. 이들은 다른 그룹보다 더 심도 있고 세심하게 진단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긍정적 감정은 모양을 구분하는 문제나 패턴 추론 문제에서도 더 빠른 사고력을 보여 줬다. 결국, 부정적 감정일 때보다 긍정적 감정일 때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참고 <완벽한 공부법>, 고영성·신영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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