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과 왼손

요즘은 기부 소식이 뉴스에 자주 올라온다. 특히 연예인 기부 소식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모습을 보고 기부에 관심 없던 사람도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에게 과도한 선물을 보내는 조공 문화가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요즘은 선물 대신 연예인이 후원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문화도 생겼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하는 게 더 바람직한 세상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부 문화가 활성화될수록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기부하는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다. 기부나 자원봉사를 나서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고 칭찬받을 일이다. 그런데 기부나 자원봉사를 통해 스펙을 쌓거나 허영을 채우려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자원봉사 시설을 방문해서 사진만 신나게 찍고 정작 도움은 전혀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사진에는 자원봉사 가는 착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안 오느니만 못하다. (특히 높으신 분들, 제발 군부대 방문 좀 자제해주세요. 최소한 가려면 평일에 가세요) 아니면 거액을 기부하고는 이를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도움받는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

 

그럼 기부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이를 알기 위해 기부왕이라 불리는 척 피니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척 피니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을 철저히 지킨 사람이었다. 그는 세간에 지독한 구두쇠로 알려졌다. 돈 많고, 잔인하고, 결단력 있는 갑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1997년 법정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회계장부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반전이 드러났다. 그는 ‘뉴욕 컨설팅 회사’라는 이름으로 15년 동안 무려 40억 달러(4조 8천억 원)의 돈을 지출했다. 사람들은 그가 돈을 빼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재단을 설립해 그 돈을 모두 기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기 재산의 99%에 대항하는 액수였다.

 

 

그가 이렇게 기부 사실을 숨긴 이유는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어린 시절 그의 이웃 중에는 차가 없어 병원에 가기 어려운 환자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이웃을 돕기 위해 차를 빌려주었는데, 그냥 빌려준 것이 아니라 일부러 볼일을 만들어 외출했다고 한다. 차를 얻어 타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받는 이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면 자랑하지 마라.” 이것이 어머니가 척 피니에게 전해준 가르침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도록 하는 게 미덕이다. 하지만 척 피니 어머니가 알려준 가르침도 여전히 유효하다. 도움은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이루어져야 한다. 기부나 자원봉사를 자랑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과시해서는 안 된다. 허영이 아니라 진심으로 돕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차이는 명백하게 알 수 있다. 허영을 채우려고 기부하면 아깝고, 진심으로 기부하면 기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넓게 보면 기부는 기부한 사람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다. 과거의 세계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제로 섬(zero sum)세상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거치고 자원이 넘쳐나게 되었다. 그리고 혁신과 창의력이 더 많은 자원을 낳는 핵심이 되었다. 이를 포지티브 섬(positive sum)이라고 한다. 이제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도우면, 그 사람이 받은 혜택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펼쳐 세상을 더 이롭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기부를 통해 가난한 나라에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고, 의료 서비스를 확충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중에서 혁신을 불러일으킬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다. 그 혜택은 기부한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온다.

 

도움을 줄 때는 우월함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마음과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또한, 도움을 받는 사람도 도움받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하길 바란다. 도움은 당신의 잠재력을 꽃 피우기 위한 거름인 셈이다. 나중에 훌륭한 사회인이 제 몫을 다하는 것으로 은혜에 충분히 보답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선의가 연쇄적으로 이어질 때 세상은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