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제조사의 근황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 쓰던 6공 다이어리 속지 중 지인들의 연락처를 기재하는 양식에는 어김없이 전화번호 아래 삐삐번호를 적는 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손안에 쏙 들어오는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지만. 여전히 삐삐는 ‘그때 그 시절’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종업원이 건네주는 진동벨을 받는다. 종종 이 진동벨을 보며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지상 3층의 커피숍에서 꼭대기 층인 3층에서 기다리고 있을때, 혹시나 진동벨이 안울리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쓸데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울렸기 때문이다. 카운터와 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울리는 진동벨, 놀랍게도 원리는 추억의 물건 삐삐에 있었다. 어떻게 삐삐가 진동벨로 진화했나고? 한 커뮤니티에 ‘삐삐 제조사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물이 올라왔다.

 

 

 

 

다시 말해 삐삐는 사라졌지만 원리는 진동벨에 고스란히 녹아든 것이다. 삐삐의 사례를 보고 시대를 풍미했던 물건은 사라졌지만 그 원리는 다른 것에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책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따르면 이를 ‘굴절적응’이라고 한다. ‘굴절적응’이란 하나의 유기체가 특정 용도에 적합한 한 가지 특성을 발전시키고 이후에 그 특성이 전혀 다른 기능으로 이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새의 깃털’을 들 수 있는데, 깃털을 새의 체온을 보호하는 용도로만 보고 있을 때 누군가 이것을 비행 용도에도 적합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이를 응용하는 걸 말한다. 삐삐 제조사는 이미 보유하고 있던 배터리와 주파수 관련 기술을 가지고 진동벨을 만들었다. 우리도 역시 살면서 유년시절엔 세상을 살아갈 기본적인 지식을 쌓고 대학에서 전공이란 이름으로 전문 분야를 파고 든다. 중요한 건, 자신의 전공이 단순히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종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한계를 지어선 안될 것이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내가 체화한 지식을 어떤 상황에서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시대의 변화에 사라져가는 기술이나 매체 등을 아쉬워하지 말고, 그동안 활용했던 지식을 새로운 플랫폼에 어떻게 담아낼 지 방법을 모색해야겠다.

 

참고
1.<삐삐 제조사의 근황>, 인벤(링크)
2.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스티브 존슨 저, 한국경제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