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현재의 터키 지역에서 기원전 7세기에 융성했던 왕국 리디아(Lydia)의 왕 크로이소스(Croesus)는 당대 최고의 부자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오늘날에도 인도유럽어족의 가장 큰 언어군인 로망스어로 큰 부자를 ‘크로이소스 같은 부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후대인들이 그의 이름을 ‘관용 표현’으로 쓸 만큼 부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리스의 7현인(賢人)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솔론 (Solon)이 방문했다. 그는 내심 자신의 엄청난 재물과 부로 솔론의 기를 꺾으려고 했지만 지혜롭고 당당한 솔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빈정이 상했지만, 그래도 솔론에게 자신의 영광을 인정받고 싶어 이렇게 물었다.

 

“나보다 행복한 사람을 본 적이 있소?”

 

그러자 솔론은 전쟁에서 고귀하게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했다. 안달이 난 크로이소스가 “그밖에 더 없소?”라고 묻자 솔론은 또 다른 영웅들을 말했다. 그러자 크로이소스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이렇게 대놓고 물었다.

 

“아니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이오!”

 

그러자 솔론이 대답했다.

 

“온갖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불행을 돌아보면, 우리는 현재의 기쁨에 자만해서도 안 되고, 언제든 바뀔 수 있는 행복을 보고 감탄해서도 안 되는 법입니다. 수없이 다양한 형태로 펼쳐지는 불확실한 미래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신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을 허락한 사람만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후 몇 해가 지나 기원전 547년에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크게 패했다. 페르시아 왕 키루스(Cyrus)는 크로이소스를 잡아들여 그에게 화형을 선고했다. 크로이소스는 화형을 당하기 직전에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솔론, 당신이 옳았소!”

 

어느 고즈넉한 저녁 팔순이신 할머니와 나는 시골집 마루에 앉아 있었다. 젖먹이 때부터 날 업어 키우신 할머니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말없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만 있어도 교감의 충만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날 할머니는 나에게 처음으로 무언가 인생의 무게를 담은 듯한 말씀을 하셨다.

 

“이 세상에는 무서운 게 두 가지가 있단다.”

 

“할머니, 그 두 가지가 뭔데요?”

 

“그것은…… 나무와 어린아이란다.”

 

“할머니, 왜요?”

 

“어떻게 성장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거든.”

 

이때 할머니의 떨리는 듯한 목소리는 내 존재를 크게 흔들고 있었다. 큰 울림이었다. 할머니의 인생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미국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요기 베라(Yogi Berra)는 팀이 승승장구하여 과도하게 자만할 때, 그리고 상황이 풀리지 않아 선수들 의기가 꺾여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경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진짜로 끝난 것이 아니다.”

 

 

요기 베라의 이 말은 그의 팀 선수들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거라면 꼭 가슴에 새겨야 할 명언이 되었고 우리 모두가 늘 묵상해야 하는 격언이 되었다.

 

앞에서 소개한 크로이소스의 이야기를 다시 보자.

 

불에 타 죽을 운명에 처했던 크로이소스의 절규를 들은 페르시아 왕 키루스는 왜 그가 죽기 직전에 “솔론, 당신이 옳았소!”라고 외치는지 궁금하여 형을 멈추고 그 의미를 물었다. 크로이소스는 우리의 미래는 ‘알 수 없음’이라고 한 솔론의 경고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큰 깨달음을 얻은 키루스는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다고 한다.

 

아마 키루스 자신도 미래에 같은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