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1대를 주문했는데 5대가 왔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

 

비즈니스 서적 등 매우 딱딱한 책에 파묻혀 있었다보니 머리가 좀 굳어지는 듯하여 일탈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한 권의 책을 골랐다. 간만에 얻은 휴가를 잘 지내기 위해 떠날 장소를 열심히 고르는 기분이었다. 선택한 책은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이다. 책을 펴자마자 첫 페이지부터 감이 왔다.

 

‘아, 이거 완전 아름다운 지중해구먼.’

 

국내 광고계를 주름잡는 사람답게 부제는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이지만 뇌리에 찰싹 붙는 대목들이 많았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전율이 일어나는 대목이 있었다. 아이들의 창의적인 발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들이 쓴 시들을 인용했는데, 특히 초등학교 1학년인 이현우 학생의 「파리」라는 시는 나를 한참 동안 멍하게 만들었다.

 

엄마, 엄마,

내가 파리를 잡을라 항깨

파리가 자꾸 빌고 있어.

 

왜 아이들의 발상은 신선하게 느껴질까? 왜 이런 아이들의 시를 보면 어른인 나는 감탄을 하게 될까?

 

 

인간은 패턴의 전문가이다. 어떤 일이 반복되면 우리는 그것을 패턴화하며 그 패턴을 근거로 미래를 예측하고 기대를 한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하면 일을 안 할 수 있까?’를 고민하는 녀석이다. 또한 반복되는 것은 패턴화해서 뇌의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우리는 현재 너무나 많은 자극과 정보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패턴화를 해서 뇌의 인지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패턴이 뒤집어지고 파괴되면 우리는 놀라고 뇌는 대상에 완전히 집중하게 된다. 또한 몸도 대상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지각하기 위해 움직인다. 놀라면 눈썹이 올라가고, 눈썹이 올라가면 눈썹과 눈 사이에 있는 피부가 늘어나고 눈이 커진다. 시야를 넓히고 대상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이다. 또한 턱의 힘도 빠진다. 말을 하지 않고 대상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우리는 놀라면 ‘말문이 막힌다’라고 한다. 그리고 온몸에 힘도 빠진다. 움직임을 최소화해 대상에 대한 인식능력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이 모든 것이 패턴이 파괴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패턴화가 강하지 않고 매우 유연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패턴을 파괴하거나 단조로운 연상과는 매우 다른 엉뚱한 연상을 한다. 그러한 유연함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어린아이들이 보여주는 패턴 파괴의 놀라움은 당신이 놓쳐서는 안될 덕목이다. 예를 들어보자.

 

2012년 12월 미국의 최대 가전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Best Buy)는 배송 사고를 냈다. 아이패드 1대를 주문했는데 5대를 배송한 것이다. 자, 우리가 아는 패턴대로 가보자. 베스트바이는 고객에게 “배송이 잘못되었음을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곧 사람을 보내 4대의 아이패드를 수거하겠다”고 할 것이다. 아니면 서비스 정신을 조금 더 발휘해 사과의 의미로 이 회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 달러짜리 상품권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베스트바이는 놀라운 행동을 보여주었다.

 

 

“당신의 정직함에 고마움을 표하며 보답으로 잘못 배송된 아이패드 4대를 모두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기존의 패턴을 파괴한 것이다. 놀라운 일, 놀라운 대상, 놀라운 메시지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나는 소재들이다. 이 이야기는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 나갔으며 이어 각종 미디어에 훈훈한 기사로 등장했다. 물론 우리나라 신문들도 이 소식을 전했기에 나도 알게 되었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 나오는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서비스를 보자. 오전에 한 손님이 와서 오후에 급하게 있을 중요한 회의를 위해 셔츠를 샀다. 백화점 직원은 대화 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새셔츠를 다림질 해 주었다. 어떤 손님이 이백화점 매장에서 라이벌 백화점에서 산 제품을 제대로 포장을 못했다고 말했다. 직원은 그 이야기를 듣자 예쁘게 포장해 주었다.

 

그런데 마지막이 압권이다. 어떤 손님이 타이어체인을 잘못 샀다며 환불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 백화점은 그자리에서 두 말 없이 환불해 주었다. 이게 무슨 놀랄 일이냐고? 무척 놀랄 일이다. 왜냐하면 노드스트롬 백화점은 타이어체인을 팔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백화점을 다니면서 매번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백화점은 친절하게 서비스를 해 준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노드스트롬같은 놀라운 서비스는 아니다. 노드스트롬 백화점은 손님이 알고 있던 백화점의 패턴을 파괴한 것이다. 서비스의 지향점을 최대의 효율이 아니라 고객의 행복에 둔 것이다. 결국 이것이 최대의 효율을 발휘했다.

 

내가 좋아하는 광고 중에 펩시콜라 광고가 있다. 한 아이가 자판기에 돈을 넣는다. 나는 당연히 거기에서 펩시콜라가 나올 줄 알았다. 이게 자판기가 등장하는 광고의 패턴이다. 그런데 코카콜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엇, 이거 뭐지?’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때 눈썹이 올라 가고 입이 좀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코카콜라를 자판기에서 뽑더니 그것을 밟고 서서 키가 좀 더 큰 자판기에 돈을 넣어 펩시콜라를 뽑는 것이 아닌가? 아이는 펩시콜라를 먹고 싶었지만, 자판기가 자신의 키에 비해 높자 코카콜라를 뽑아 그것을 발판 삼아 펩시콜라를 뽑은 것이다. 이 얼마나 유쾌한 발상인가?

 

나도 패턴 파괴의 힘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한 적이 있다. 길을 가던 도중에 커피를 사려고 아주 작은 개인 카페에 들렸다. 그 카페의 카운터 앞에는 단골고객들의 도장을 찍는 쿠폰들이 멋있게 장식되어 있었다. 카페 사장님의 감각이 묻어 나왔다. 카페의 쿠폰은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카페의 고객들은 잃어버릴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또한 도장 쿠폰들을 카운터 앞에 멋지게 장식해 놓으면 그 자체가 멋진 인테리어가 될 뿐만아니라 ‘이 카페는 공간은 작지만 고객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나는 그 센스에 보답하고 싶었다. 사장님이 커피를 건넨 후 새로운 쿠폰을 꺼내며 도장을 하나 찍으려는 찰나, 나는 괜찮다고 사양했다. 그러고는 카운터 앞에 있는 쿠폰 중에 도장 9개가 찍힌 것을 찾았다.

도장 10개를 찍으면 커피 한 잔이 공짜였다. 그 쿠폰에 내 도장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나는 여기에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도장이 큰 의미가 없으니 다른 분에게 아주 작은 선물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도장 9개가 찍힌 쿠폰에 도장 하나를 더 찍어 10개를 만든 후 쿠폰 뒤에 익명으로 행운의 메시지를 남겼다.

 

사장님의 눈썹이 올라갔다. 물론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이일을 몇 년동안 했지만 나 같은 손님은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마 쿠폰의 주인도 기분이 좋으셨지 않았을까.

 

이게 모두 다 ‘파리’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