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매일’ 적어야만 하는 이유

 

세계 최고의 심리학자인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대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찬물을 이용해 재치 있는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에 한 손을 손목까지 담그게 한 후, 손을 빼도 된다는 지시를 받기 전까지는 빼지 말라고 했다. 대신 실험 참가자 들은 다른 한 손으로 키보드를 두들겨 고통의 강도를 기록할 수 있었다. 실험 당시의 경험을 최대한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실험은 먼저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첫 번째는 고통스러울 만큼 차갑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닌 정도의 물에 한손을 1분 동안 담그고 있는 것이다. 1분이 지난 후에는 이들에게 따뜻한 수건을 주었다.

 

7분 후에는 첫 번째 실험보다 시간이 긴 두번째 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1분 30초 동안 찬물에 손을 담그는 것이다. 그런데 실험에 약간의 조작이 있었다. 처음 1분 동안에는 첫 번째 실험과 온도가 같았지만, 그후에는 물통에 약간 따뜻한 물이 흘러 들어가도록 수도밸브를 열어 주었다. 30초 동안 수온은 1도가 올랐는데, 대부분의 실험 참가자들은 고통의 강도가 조금 줄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실험참가자들은 물의 온도가 몇도이며, 따뜻한 물로 인해 온도가 1도 올랐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이제 곧 세번째 실험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알리고, 첫 번째 실험과 두 번째 실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실험을 선택하겠는가?’아마 두말 할 것 없이 1분 짜리 첫 번째 실험일 것이다. 마조히스트가 아닌 이상 어리석게 1분 30초짜리 두 번 째 실험을 선택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처구니가 없게도 80%에 가까운 참가자들이 두 번째 실험을 선택했다. 마지막에 고통이 줄었다는 기억이 결과적으로 더 긴 고통을 선택하게 한 것이다. 이들은 실험내용을 알고 얼마나 자신의 어리석은 결정에 놀랐을까?

 

그렇다면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참가자들은 한 손이고 통에 젖어 있을때, 다른 한손은 그 경험을 키보드로 생생히 기록할 수 있었다. 만약 이들이두 실험의 경험을 최대한 생생하고 정확히 적어 놓았다면, 그리고 선택의 순간에 그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면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80%의 참가자 중 상당수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혹시 나만의 비망록이 있는가? 비망록이란 어떤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적어둔 기록인데, 인류 지성사에 족적을 남긴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것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은 바로 그가 쓴 비망록의 결정체이다. 그는 다른 자료에서 얻은 좋은 글, 즉흥적으로 떠오른 새 아이디어, 의문을 가졌던 내용들을 비망록에 철저히 기록했다. 그리고 그것을 틈틈이 점검하면서 생각을 발전시켰다. 비망록은 그의 길에 현명한 이정표가 되었던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인 존 로크(John Loke)는 비망록은 물론이거니와 비망록의 색인을 만드는 정교한 시스템까지 개발했다. 존 밀턴(John Milton)과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도 다른 많은 위대한 지성인들과 마찬가지로 비망록을 꼼꼼하게 기록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책을 쓰며 일을 이루어갔다.

 

그래서 찰스 다윈은 비망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비망록은 위대한 책이다.”

 

나 또한 비망록의 매력에 빠진 사람이다. 물론 옛 지성들처럼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멋진 명언들과 중요한 내용, 영감을 주는 문구들은 워드 파일로 매일 정리한다. 귀찮더라도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바로 아이폰에 반드시 적어 놓고 클라우드에 올려놓아 언제라도 점검할 수 있게 했다.

 

나중에 내가 적은 내용들을 보고 놀랄 때도 있다. 지금의 나라면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들이 당시의 경험을 끌어 안고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평소에 쓰는 칼럼이나 팟캐스트, 그리고 책 등 개인적인 비즈니스와 관련된 많은 것들을 비망록에 기대고 있다. 찰스 다윈의 말처럼 비망록은 정말 위대한 책이다.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나 자신을, 나의 기억을, 나의 직관을 완전히 믿어서는 안 되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같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귀찮더라도 매일 비망록을 쓰는 습관을 들인다면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는 순간에 멋지게 당신을 구원해 줄 위대한 책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