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비(?)의 일상.jpg

폭군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역사 속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가부장적인 가장, 인격모독을 남발하는 상사도 폭군이다. 이런 폭군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벗어날 도리가 없는 경우이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을 두고 이런 무심한 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왜 이혼을 안 하고?” 이혼이라는 게 그냥 몸만 나온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마땅한 경제력이 없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폭군 같은 배우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폭군의 지배를 묵묵히 참는 경우도 많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악랄한 폭군이 바로 대학원생을 착취하는 교수가 아닐까 싶다. 왜 그럴까? 대학원생은 절대 교수에게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문을 내고 학계에서 인정받으려면 교수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약 항명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면? 사실상 해당 분야의 커리어는 끝장났다고 봐야 한다. 수년간 공부한 노력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 걸 각오해야만 한다.

 

실제로 내가 대학에 다닐 때 폭언을 일삼는 교수님에 대항하여 해당 연구실의 대학원생이 일제히 그만둔 일이 있었다. 그 결과 교수는 새로운 대학원생을 받아들였고, 그만둔 대학원생들은 백수로 지내야 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인데, 대학원생 착취는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것 같다. 다음은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대학원생과 교수 사이의 문자 내용이다. 보고 있으면 가슴이 턱턱 막혀 온다.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주작 아니냐? 할 수도 있는데, 댓글 반응을 보면 요즘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일인 듯하다. 대학원생 착취 문제는 공중파 뉴스에서도 거론됐지만, 여전히 현재 진형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유는 명백하다. 그런 부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선뜻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폭군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라도 폭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도 폭군이 될지 모른다. 내가 교수가 됐을 때 저런 쓰레기 같은 짓거리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그만큼 약자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진다. 항상 올바른 삶을 살겠노라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약자를 착취하는 악마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사례를 볼 때마다 분노의 목소리를 보냄과 동시에 내면을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나는 폭군이 되지 않을 수 있는가?

 

참고 : PGR21, 보면 심장 갑갑해지는 대화.jpg